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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조(入鄕始祖)
한 지역에 처음 정착한 시조를 입향시조(入鄕始祖) 또는 줄여서 입향조라 합니다. 장안동 연안차씨의 입향시조는 득관조 31세손 함열공(咸悅公) 휘(諱) 응훈(應勳, 이하 함열공) 이십니다. 기록에 따르면 함열공께서는 1593년 선조 26년 癸巳생 陽城人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시기는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의주로 피난갔다가 한양으로 돌아오기 전 후의 시기입니다. 이후 44세경인 1637년 인조 15년에 무과에 응시 보인의 지위를 부여 받으셨으며, 이 시기 또한 청나라가 일으킨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삼전도의 굴욕이 있었던 해로 함열공께서 입향하던 시기는 전란으로 국내외로 불안정하고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陽城人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장안동은 陽城縣의 일부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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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지(世居地)
세거지(世居地)는 과거 집성촌(集姓村) 또는 동족 마을의 개념에서 출발했지만, 현재는 적은 수의 가구라도 세대를 계승하면서 거주해 온 마을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안동은 함열공께서 1600년 경 입향하신 이후 2010년경 까지 100여호로 무리지어 살았던 집성촌이었으며, 31세 함열공 이후 45세손까지 누대에 걸쳐 400여년간 살아온 명실 상부한 연안차씨 세거지라 할 것이며 그 유적은 아래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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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동(長安洞) 세거지 유적
연안차씨 100여호가 무리지어 2010년경까지 살았던 자연마을의 세거지(世居地) 항공사진 입니다. 이 사진은 1998년 장안동 상공에서 찍은 항공사진으로 집성촌(集姓村) 또는 동족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나( 사진 하1 ), 2010년 부터 아파트단지가 입주 현재 집성마을은 해체되고 하늘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습니다. (사진하2)

사진 하1 (1998년 장안동 상공의 항공사진, 가운데가 장안마을)

사진 하2 ( 장안마을을 대체하고 한늘채 아파트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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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鷰室)선영/연안빌딩/장호원선영
이충동 연실(鷰室 혹은 燕室, 제비실)에 입향조 등 10여기의 묘소가 있는 선대묘 선영이 있었는데 2009년 경 국제대학교와 하늘채 아파트 단지조성등 도시계획이 실시 되고 도로가 선영사이로 개설되었습니다. 이에 선대묘소는 새로이 장호원에 유택을 마련 면례하였습니다. 이후 2019년 연실 선영의 잔여지에는 연안빌딩이 건립되어 연안차씨 장안리 문중 일가의 구심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연실(鷰室)은 순수 우리말 제비집에서 온것으로 종친 車善秉 翁( 당 93세)에 의하면 제비가 알을 품은 형상이라 제비실 이라 했다고 유래를 전합니다. 그후 여기에 맞는 한자로 지명을 기록하면서 제비 연(燕) 집 실(室)로 기록한 것으로 보이며, 실제 우리 함열공 파보에도 입향조 등의 묘소 위치를 하연실(下燕室) 등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송탄고등학교와 휴먼시아 아파트 사이에 서정리로 통하는 길이 있었는데 이 고개를 제비실고개라 하였습니다. 한편 아래 옛 선영의 사진을 보면, 제비집이 연상 되기도 한여 아늑하고 양지바른 곳으로 잊혀져 가는 족보속의 지명입니다. 그 외 웅송곡(雄松谷, 웅송골), 아모골, 감골, 등은 오직 우리 문절공파 함열공계보와 선조들의 기억에만 있는 문헌에도 없는 정든 지명입니다. (그외 장안동 연혁 마을내지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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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동 월운산(月雲山) 선영/의덕사
2010년경 시작된 장안동 일원의 도시계획사업으로 마을이 해체되고 제비실 입향조 이하의 묘소는 장호원으로 면례 되는 등 연안차씨 장안동 세거지는 도시화의 갖은 수난을 겪었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후손들이 모셔진 장안동 월운산(月雲山)선영은 2010년부터 시작하여 2019년 본격화된 브레인시티 조성사업을 요행히 비껴가 그간 장안동 마을을 굽어보고 있어 400년 세거지의 위상을 꿋꿋이 지키고 있으며, 여기에는 득관조 등 109위의 선조를 봉사하는 사우 의덕사(懿德祠)와 연안차씨 사파조 중 월파옹파(月波翁派) 파조 諱 종로(宗老), 문절공파(文節公派) 파조 휘 원부(源頫) 선조님의 묘소가 있으며 21세 휘 안경(安卿) 선조님의 묘소가 있었습니다. 위 월파옹, 문절공, 안경외 12위는 양주 봉황산에 묘소가 있었으나 1972년 양주 개발로 장안동 월운산으로 면례하였으며, 2001년 10월 경 21세 중랑장 諱 안경(安卿), 22세 諱 상도(尙道), 23세 諱 중생(仲生) 등 12위 묘소는 공의 후손이 경북 울주군 청량면 중리 등 후손의 연고지로 모두 면례하고, 현재는 월파옹과 문절공의 묘소만 장안동 월운산 선영에 자리 하고 있습니다. (연안차씨 지제종중 족보 자료, 2004 대동보 중에서)






위로부터 장안동 월운산 선영 /의덕사/월파옹과 문절공묘소/중랑장 묘소
중랑장(21세 안경)외 12위는 1972년 월운산 동쪽에 있었으나 2001년 울주군 등 후손 연고지로 면례함